[수은중독의 편파 야구 Just For Twins] 황목치승, 뭔가 꿈이 있는 야구 선수

4일 시합 결과 시합 결과 : LG 트윈스 6(승) - 넥센 히어로즈 4(패)

INTRO - 야잘잘?
과거 필자가 전업 신문기자 생활을 하던 때 겪은 웃지 못 할 해프닝 하나. 내근을 하고 있는데 데스크가 "이 미친 XX!"라며 갑자기 욕설을 퍼부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귀를 쫑긋 했더니 사건은 이랬다.
한 젊은 기자가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에 대한 기사를 보낸 모양이었다. 그런데 경험이 짧았던 이 초년 기자가 기사 중반에 "유 씨는 이번 공연에서…"라고 쓴 것이었다. 이 대목을 본 데스크는 당장 그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야! 유진 박이 유 씨면, 이름은 진박이냐?"라며 그야말로 그 기자를 작살을 냈다.

사실 실수긴 하지만 한국 사람의 성(姓)에는 종종 헛갈리는 게 있다. 선우나 황보같이 널리 알려진 두 글자 성은 괜찮지만 사공일(司空壹) 전 재무부 장관처럼 희귀한 두 자 성을 가진 인물의 경우 종종 '사 장관'으로 잘못 불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LG트윈스의 내야수 황목치승도 사실 실력보다 그 성의 특이함 때문에 먼저 유명세를 탄 경우였다. 황 씨가 아니라 황목 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할아버지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먼저 언론을 탔다. 이때까지만 해도 황목치승은 그저 고양 원더스에서 수비만 제대로 배운 대수비, 대주자 요원일 뿐이었다.

하지만 황목치승은 지난주부터 그야말로 휴먼 스토리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프로 첫 안타를 최강 삼성 라이온즈의 막강 우완 불펜 안지만으로부터 뽑아냈다. 그 안타는 곧 결승타점으로 이어졌다. 주전 유격수 오지환의 부상으로 첫 선발 출장한 1일에는 두 개의 깨끗한 안타를 뽑아내며 그가 결코 평범한 대수비 요원이 아님을 전국에 알렸다.

'야잘잘'이라는 별명을 얻은 국민 우익수 이진영의 이야기처럼 "야구는 원래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스포츠"이기만 하면 사람들이 야구에 이처럼 열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진영의 말처럼 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잘 하기도 하지만, 황목치승처럼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살아남은 처절한 생존자가 잘 하기도 한다. 그래서 야구가 여전히 재미있고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4일 넥센전 2회말 2사 만루에서 중전 적시타를 터뜨리고 있는 황목치승.

최고의 순간 - 2회 황목치승의 중전 적시타
선두타자 이병규가 11구까지 승부를 끌면서 좋은 조짐을 보였다. 이진영의 스트레이트 볼넷과 채은성의 몸에 맞는 볼, 박경수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LG는 안타 하나 없이 한 점을 뽑았다. 또 다시 최경철이 몸에 맞는 볼로 만든 2사 만루. 여기가 중요했다.

리드오프 정성훈은 역시 노련했다. 이날 넥센 선발투수 금민철의 직구는 전혀 제구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직구 구속이 140km가 되지 않았다. 정성훈은 이 타석에서 작심하고 변화구만을 노렸다. 제구가 되지 않는 느린 직구는 충분히 골라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먼저 투 스트라이크를 먹었지만 정성훈은 끝까지 제구가 되지 않는 직구를 골라내며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볼넷을 얻었다. 베테랑다운 승부였다.

다음 타석에 이날의 히어로 황목치승이 등장했다. 금민철은 황목치승이 정성훈보다는 상대하기 좀 편했던지, 연달아 좋은 코스에 직구 스트라이크를 꽂으며 영점을 잡았다.

하지만 황목치승은 금민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끈질겼다. 직구면 직구, 변화구면 변화구, 황목치승은 끈질기게 커트를 해대며 금민철을 괴롭혔다. 그리고 9구를 통타해 2타점 적시타를 뽑으며 초반 분위기를 완전히 LG트윈스 쪽으로 가져왔다.

정성훈과 황목치승, 공을 고를 줄 알고 투수를 괴롭힐 줄 아는 테이블 세터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주는 멋진 두 타석이었다. 6회말 황목치승이 보여준 멋진 기습번트 안타는 팬서비스였다.

최악의 멤버 - 하일성
2회 초 최경철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포수 장비를 풀었다. 뭔가 몸이 불편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양상문 감독이 뛰어 나왔다. 하지만 이날 해설을 맡은 하일성 위원은 무엇을 봤는지 "양 감독이 최경철에게 장비를 다시 차라고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그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한 필자는 정말 그랬는지 궁금해 포털 사이트가 제공하는 화면이 뜨자마자 여러 차례 반복해 그 장면을 돌려봤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양 감독은 심판을 향해 무언가를 이야기했을 뿐 최경철을 향해 "장비를 차라"고 말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무더운 여름, 홀로 트윈스의 안방을 지켜온 최경철은 양상문 감독이 "대체 불가능한 선수"라고 공언을 한 포수다. 그 포수가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껴 프로텍터를 풀었는데, 감독이 나가면서 대뜸 "장비를 다시 차라"고 말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요즘 방송 기술은 과거에 비해 너무나 정교해졌다. 대충 한 마디 해도 넘어가는 시대가 아니다. 작은 실수라도 정교한 촬영 기술에 의해 곧 그 잘못이 들통이 난다.

하 위원의 해설 실력에 대해 논하려는 게 아니다. 그가 해설을 하면 TV 볼륨을 소거한다는 LG 팬들의 원성을 이 자리에서 전하고 싶지도 않다. 5회 손주인이 투구를 맞았을 때 "등이면 괜찮아요"라는 코멘트까지도 참을 수 있다. 그리고 해설자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것도 흔쾌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 실수가 '잘못 봐서' 나온 것이면 몰라도 '보지도 않은 것'에 기반을 두어서는 안 된다. 해설자는 해설을 하는 사람이지 엉뚱한 상상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때 한국 야구 해설계를 양분했던 하일성 위원이다. 많은 사람이 그를 사표(師表)로 생각하는 만큼 좀 더 신중한 해설을 그에게 기대한다.

OUTRO - 꿈이 있는 선수
LG 트윈스의 김민호 코치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황목치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뭔가, 꿈이 있는 선수 같아요."

꿈! 40대 중반을 살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단어인가. 황목치승이라는 새로운 휴먼 스토리를 써 가는 이 작은 거인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인생에서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수은중독 :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종도의 만루 홈런을 보고 청룡 팬이 된 33년 골수 LG 트윈스 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두 자녀를 어여쁜 엘린이로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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